- 4GAMER, 스기우라 요텐 기자
1974년에 탄생한 '던전 앤 드래곤즈'(이하 D&D)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했다. D&D를 세상에 내놓은 TSR은 당시 위스콘신주의 레이크 제니바라는 마을에 거점을 두고 있었다. 레이크 제니바에서 개최된 게임 이벤트가 '제네바(Geneva)의 컨벤션(Convention)'이라는 뜻을 가진 'Gen Con'이다.
지난 8월에 개최된 'Gen Con 2024'에서는 'D&D 탄생 50주년'을 기념하여 역대 D&D에 관여한 관계자들을 초청해 당시 증언을 듣는 세션이 진행됐다. 1974년 초창기 'D&D'부터 현재 규칙인 5th Edition(제5판)까지, 각 시대의 D&D에 관여한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또한, 행사장에서는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이벤트 'D&D Musium'도 진행됐다. 이곳에서는 이번 역사 증언에 등장하는 귀중한 제품들이 실제로 전시됐다. 전시물과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을 곁들여 50년에 걸친 D&D의 역사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 1974년: 첫 번째 박스 세트 '오리지널 던전 앤 드래곤즈'
D&D 50년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행사의 시작은 최초의 D&D, 즉 '오리지널 던전 앤 드래곤즈(이하 OD&D)에 대한 세션이다. 이후 제품들과 구별하기 위해 'Original(오리지널)'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당시에는 물론 유일무이한 D&D로 Tactical Studies Rules(이후 TSR)에서 1,000세트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첫 번째 D&D인 OD&D는 수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상자에 담겨 있었다. 상자의 색깔 때문에 통칭 '브라운 박스'라고도 불린다. 맞은편 왼쪽은 D&D 원류가 된 워게임 'Chaimail'이다. OD&D의 상자에도 'Rules for Fantasy Medieval Wargames Campaign(중세 판타지 워게임을 위한 캠페인 규칙)'이라고 적혀 있어, 아직 RPG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세계 최초의 RPG에 동봉된 3권의 소책자. 캐릭터와 주문에 대해 쓰인 'Men & Magic'. 몬스터와 보물에 대한 데이터가 수록된 'Monsters & Treasure'. 마지막 'The Underworld & Wilderness Adventures'에서는 모험의 무대가 설명되어 있다. 현재의 코어 룰북과 같은 3권 구성이지만, 각각의 역할이 미묘하게 다르다.
이번 OD&D를 이야기하는 세션에는 스티븐 R.마쉬(왼쪽)와 마이크 카(오른쪽)가 연사로 나섰다. 가운데는 사회를 맡은 조나단 피터슨이다. |
사회자 조나단 피터슨은 수많은 게임 역사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Playing at the World'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Little Wars'까지 거슬러 올라가 현재 게임 문화의 원류를 추적한 책이다. D&D 5판 'Dungeon Master's Guide'(이하 DMG) 권말의 '부록 D: 던전 마스터를 위한 추천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진은 제2판 1권으로, D&D의 성립 과정을 그리는 형태로 재편집된 신판에 해당한다.
D&D 5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The Making of Original Dungeons & Dragons'. 원조 OD&D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공식 역사서로, 집필에 조나단 피터슨이 참여했다. |
그런데, OD&D를 탄생시킨 개리 가이객스와 데이브 아느네손은 안타깝게도 모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이 세션은 당시를 아는 관계자를 초청하여 1970년대 이전의 모습을 듣는 순서로 진행됐다.
연단에 오른 마이크 카는 1963년 개최된 'Gen Con 1'에 참가했던 귀중한 시대의 증인 중 한 명이다. 당시 RPG라는 명칭은 물론 존재하지 않았고, 17세였던 그는 워게임에 대한 관심으로 IFW(International Federation of Wargaming의 약칭으로, 미국 중서부에 존재했던 게임 서클의 연합체. 중심이 된 인물 중 하나가 D&D의 창시자 중 한 명인 개리 가이객스)라는 서클의 인맥을 통해 Gen Con의 존재를 알게 됐다. 부모님께 부탁하여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의 집에서 500km 이상 떨어진 위스콘신주 레이크 제니바까지 차를 타고 갔다. 그곳에서 RPG의 창시자 중 한 명인 개리 가이객스를 만났다.
1960년대부터 미국 중서부의 게임 서클에 참여했던 마이크 카. 후술할 역사적인 모듈 'In Search of the Unknown'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
Gen Con에 참가한 것이 인연이 되어 마이크 카는 개리 가이객스를 알게 됐다. 이후 TSR의 부름을 받아 수많은 D&D 관련 제품의 편집에 참여하게 된다. 'Advanced Dungeons & Dragons 1st Edition'(이하 1e)의 핵심 룰북과 초기 명작 모듈(시나리오)의 편집을 담당한 것이 마이크 카로, 초창기 중요한 제품에 많이 참여했다고 한다.
마이크 카의 대표작은 역시 기념비적인 B1 모듈 'In Search of the Unknown'을 꼽을 수 있다. 이 모듈은 초창기 'Basic Set'에 포함되어 초심자를 배려한 구성으로, 게임 플레이 방법과 모험을 만드는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1977년에 출시된 최초의 'Dungeons & Dragons Basic Set'. 이 당시의 'Basic Set'은 고급 'Advanced Dungeons & Dragons'와 대비되는 'Basic'으로, 초보자를 위한 엔트리 제품이라는 위치였다.
마이크 카는 B1 모듈 개발 당시를 회상하며, “사실 나는 D&D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 거리를 둔 외부의 시각으로 D&D를 바라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것이 초보자용 모듈을 집필하는 데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B1 'In Search of the Unknown'이라는 모듈은 “B~”라는 코드가 부여된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B"는 ‘Basic’이며, ‘1’은 첫 번째 작품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B2에 해당하는 'The Keep on the Borderlands(국경의 성채)부터 B12의 'Queen's Harvest(여왕의 수확)'까지는 일본어판이 출간되었으나, 이 B1만 번역되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Basic Set'에 포함된 모듈이 중간에 B2 '국경의 성채'로 변경되어 일본어판이 발매될 무렵에는 초보 DM을 위한 입문적 역할이 B2로 전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D&D 뮤지엄에서 당시의 플레이 풍경을 재현한 전시. 주사위도 당시 그대로의 실물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 시기의 주사위는 강도가 약하고 모서리가 마모되어 부서져 있다. 또한 숫자 부분은 채색이 되어 있지 않아 숫자가 잘 보이지 않아 직접 크레용을 문질러서 사용했다고 한다.
스티븐 R.마쉬는 학생 시절 D&D를 접하고 초기 TSR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일례로 그는 초기 D&D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Psionics(사이오닉스)'의 근간이 되는 아이디어를 창출하기도 했다. 사이오닉스는 정신의 힘을 구현한 초자연적 능력으로, 판타지적 마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역대 D&D에서는 선택 규칙으로 지원되는 경우가 많으며, 사이오닉스가 처음 소개된 것도 'Eldritch Wizardry'라는 서플리먼트였다.
'D&D Musium'의 전시물 중 'Eldritch Wizardry'(왼쪽). 이 서플리먼트에는 새로운 직업으로 '드루이드'가 도입된 것 외에도 강력한 악마 '오르크스'와 '데모고르곤', 그리고 아티팩트 'The Orbs of Dragonkind(일본의 '드래곤 랜스' 팬들에게는 '드래곤 오브'로 알려져 있다)' 등이 수록되어 있다. 오른쪽은 'Gods, Demi-gods & Heroes'로 신화 속 신들을 다룬 초기 서플리먼트다.
스티븐 R.마쉬는 세션에서 RPG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때를 회상했다. “D&D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시절이었는데, 그때 같은 책상에 앉아 있던 사람이 샌디 피터슨이었다. 그에게 룰북을 빌렸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브리검영 대학교) 동창이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D&D에서 사이오닉 능력을 창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Call of Cthulhu(크툴루 신화 TRPG)'의 제작자가 된 것이다.
OD&D와 함께 전시된 'The Strategic Review'는 Tactical Studies Rules(TSR)에서 발행한 뉴스레터다. 1975년 봄에 발행된 첫 번째 호로서 가격은 50센트였다. 뉴스레터에는 D&D의 크리처 등이 소개됐는데, 1호에 처음으로 'Mind Flayer(마인드 플레어)가 게재됐다.
■ 비약적인 발전과 동시에 전례 없는 시련에 직면한 'AD&D 1st Edition'
D&D의 역사를 돌아보는 다음 세션은 1e, 즉 'Advanced Dungeons & Dragons 1st Edition'의 시대다. 이 무대에서는 알렌 햄맥과 루크 가이객스가 연단에 올랐다. 이 시대에 D&D는 큰 도약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1e의 Player's Handbook(이하 PHB)과 DMG, 이 에디션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PHB, DMG, Monster Manual(이하 MM)의 3권으로 구성된 핵심 룰북 구성이 확립됐다. |
이번 세션에 초청된 루크 가이객스는 D&D의 확장을 '공과 사'의 양면으로 경험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인 개리 가이객스가 운영하는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고, 그에 따라 가족의 삶도 변화했다.
“아버지는 세금을 50%나 가져가서 아일랜드 이민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엄마가 캐딜락 세빌을 샀다", "영국 여행을 여러 번 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클린턴(위스콘신주)에 집을 샀다"는 등 D&D의 확장과 함께 변화해 온 어린 시절의 실체적 경험을 들려줬다.
또한 그는 아버지의 크리에이티브한 면모를 직접적으로 접한 인물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돌아와 아버지 사무실에 있는 MM을 읽기도 했고, 아버지가 집에서 집필 작업을 할 때면 원고를 보기도 했다. 때에 따라서는 그것을 테스트 플레이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루크 가이객스는 단순히 개리 가이객스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창작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자랐으며, 그 작품에 깊이 관여해 왔다고 한다.
세 번째 핵심 룰북인 MM과 부록인 'Deities & Demigods'. 'Deities & Demigods'는 전 세계의 신화를 모은 부록으로, 그중 하나로 바빌로니아 신화도 수록되어 있다. 일본의 비디오 게임 '드루아가의 탑'이 D&D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유명한데, 여기에 'DRUAGA(드루아가)', 'GILGAMESH(길가메시)', 'ISHTAR(이슈타르)'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 후 개리 가이객스는 TSR 엔터테인먼트 일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베벌리힐스에 있는 10에이커에 달하는 저택을 회사 명의로 빌렸다. 그곳은 아버지를 위한 사무실이 있었고,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내 동생들을 위한 훌륭한 생활용품도 구비되어 있었다"라고 캘리포니아의 생활을 회상했다.
하지만 개리 가이객스는 크리에이터로서 정점을 찍은 후 결국 회사를 떠난다. 간단히 배경을 설명하자면, 당시 TSR은 경영 다각화로 인해 수익률이 급속도로 악화했다. 게다가 주요 주주인 개리와 블룸 형제(브라이언, 케빈)와 주도권 다툼이 벌어졌다. 세션에서는 이러한 배경을 언급한 후 사회자 조나단 피터슨이 어려운 시기의 개리 가이객스에 대해 질문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에 대해 루크 가이객스는 “아버지는 사업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무언가 일이 일어나 회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상을 향해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어떻게든 엔진을 재점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고 말했다.
D&D의 창시자 개리 가이객스의 아들인 루크 가이객스. Melf's Acid Arrow 등의 주문명에 이름을 남긴 마법사 'Melf(멜프)'는 루크 가이객스가 개리 가이객스의 캠페인에 사용했던 캐릭터에서 유래했다. 현재 게임 회사 'Gaxx Worx'를 운영하고 있으며, 당일에도 회사의 티셔츠를 입고 참가했다.
원래 레이크 제니바에서 개최된 Gen Con은 인디애나폴리스로 장소를 옮겼다. 하지만, RPG의 발상지이자 개리 가이객스의 거주지였던 레이크 제니바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Gary Con'이 그의 아들인 루크의 요청으로 개최되고 있다.
경영난과 사내 투쟁에 시달리던 이 시기, D&D는 그런 비즈니스적인 문제와는 다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1979년 8월, 미시간 주립대 학생이 실종되면서 그가 플레이하던 D&D와의 연관성이 의심되어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제임스 댈러스 에그버트 실종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상황을 알렌 햄맥은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회사 임원으로부터 내선 전화가 왔는데, FBI가 찾아와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실종된 소년이 D&D를 하고 있었을 가능성, 미시간 대학교의 증기관 터널(소년이 그곳에서 마약을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끝났음)에 대한 이야기. 그런 것들에 대해 사내의 모든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수사관이 있는 방에 가보니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소년의 방에서 발견한 것인데, 지도와 기출간된 모듈(시나리오) 사이에 공통된 패턴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기꺼이 조사에 협조했지만, D&D와의 연관성을 전혀 찾을 수 없었고, 결국 D&D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혐의는 벗겨졌지만, RPG라는 미지의 놀이에 대한 호기심과 의심의 눈초리가 즉시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 사건을 필두로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지의 놀이인 RPG에 대한 다양한 '사건'이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D&D에게 경영적이고, 사회적으로도 어려운 시련에 노출된 시기였다.
알렌 햄맥은 1970년대부터 수많은 작품에 참여한 디자이너이자 편집자다. 대표작으로 'The Ghost Tower of Inverness'가 있는데, 이 작품에는 'C1'이라는 코드가 새겨져 있다. “C~"는 ‘Competition(경쟁)’을 의미하며, 그 이름처럼 컨벤션 등에서 ‘경쟁하면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D&D 뮤지엄에 전시된 알렌 햄맥의 'Assault on the Aerie of the Slave Lords'. 이 역시 Gen Con에서 사용된 이벤트용 모듈로, 총 4작품으로 구성된 'A'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수많은 D&D 모듈 중에서도 명작으로 꼽히며, 2013년에는 'A' 시리즈를 정리한 기념판 'Against the Slave Lords'도 출간됐다.
■ 모든 요소를 찾아내어 재구성한 'AD&D 2nd Edition'
D&D의 창시자 개리 가이객스가 떠나고 새로운 경영자로 로레인 윌리엄스를 맞이하면서 TSR은 존속한다. 개리 가이객스와 블룸 형제의 지배권 다툼은 결국 한쪽의 승리로 끝나지 않고, 제삼자인 윌리엄스가 주식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형태로 TSR을 지배하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D&D는 규칙을 새롭게 바꾼 'Advanced Dungeons & Dragons 2nd Edition'(이하 2e)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시대의 증인으로 무대에 오른 것은 데이비드 '젭' 쿡과 스티브 윈터였다. 두 사람이 지금까지의 등단자와 다른 것은 실제로 코어 룰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 쿡은 리드 디자이너, 윈터는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2e의 핵심 룰북 개발에 참여했다.
2e의 PHB, 일본에서도 신와에서 출시되어 'AD&D하면 이것!'이라고 말하는 노련한 팬들도 많을 것이다. |
윈터는 TSR 시절부터 '4th Edition(4판)' 시대까지 오랜 기간 D&D 관련 제품 개발에 참여한 베테랑이다. 2e에서는 핵심 룰북의 구성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명료한' 규칙을 만들기 위해 방대한 검증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모든 요소를 도트 매트릭스 방식의 프린터로 출력하여 벽에 붙이면서 재구성했다"고 한다.
2e의 개발은 컨셉의 전면적인 재검토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애초에 1e의 규칙에는 대량의 추가 규칙이 추가됐고, 그것들이 여러 보충자료와 'Dragon' 잡지에 분산된 상태였다. 또한 규칙의 운영상 불편한 측면도 있어 이를 개선하는 것이 큰 목표였다고 한다.
“1e에서는 플레이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가 DMG에 게재되어 있었고, 플레이어는 그러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다"고 윈터가 말했다. 1e의 PHB는 매우 얇고, 매우 기본적인 데이터만 게재되어 있었다. 현재 PHB에는 전투에서 공격을 어떻게 판단하는지와 같은 규칙이 나와 있지만, 1e 시절에는 DM만이 알아야 할 사항으로 DMG에게만 게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플레이어도 이해할 수 있어야 게임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는데, 2e의 개발은 이런 근본적인 부분을 재검토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쿡은 2e의 핵심 규칙에서 리드 디자이너를 맡았다. 그는 TSR을 떠난 후 인터플라이 엔터테인먼트에서 '폴아웃 2'의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이후 '엘더스크롤 온라인'의 개발에 참여했다. Adventures'에서 “Weapon Proficiency(무기 숙련도)”를 도입한 크리에이터로 알려져 있다. “Weapon Proficiency"는 2e의 PHB에도 수록되어 현재도 게임 용어로 최신 룰북에 계승되고 있다.
이와 함께 1e에 존재했던 요소 중 어떤 부분을 핵심 규칙에 포함하고, 어떤 부분을 향후 보충 자료로 남겨둘 것인지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졌다. 이를 위해 끝없는 논의가 반복되었다고 한다. 최종 결정에는 개발팀 내 논의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의 의견도 반영되어, 당시 TSR이 주최한 Gen Con에서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다. 이러한 플레이어 리서치 중 특히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전문지 'Dragon'에 실린 쿡의 기고문이었다. 그 이름도 “Who dies?(누가 죽는가?)”이다.
쿡은 “어떤 클래스를 수록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Dragon 잡지에 “Who dies?”라는 기사를 게재하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Who dies?” 즉, ‘어떤 클래스를 PHB에서 제외할 것인가?’라는 의미이다. 그 결과, 바바리안이나 몽크 등의 클래스는 수록되지 않고 서플리먼트로 넘어가게 됐다. 또한, 어쌔신은 제외가 거의 확정됐으며, 이유는 '사악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파티의 조화를 깨뜨릴 수 있다는 점과 세간의 (특히 엄마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또한, 2e에서는 '매직 유저'가 '마법사'로 바뀌는 등 클래스의 명칭이 변경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오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2e에서 크게 확장된 세계 설정 '포가튼 렐름'. 소설과 디지털 게임 등 폭넓은 장르로 전개되었지만, 쿡에 따르면 “처음에는 Greyhawk에 손을 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포가튼 렐름 세계는 크게 확장되어 갔다.
가운데는 'Introduction to the Forgotten Realms'라는 내부 자료. 소설이나 게임 등 관련 제품을 집필할 때 참고한 성전이라고 한다. |
1990년 말, TSR의 시대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TSR이 파산한 직접적인 원인은 신작 주사위 게임 'Dragon Dice'의 실패와 대형 출판사 랜덤하우스의 대량 반품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D&D를 둘러싼 환경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사회자 조나단 피터슨은 TSR 말기의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당시를 회상했다.
윈터는 “'매직 더 개더링' 신작과 함께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와 같은 작품에 의해 RPG 시장이 변화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쿡은 “그래서 플레이어가 시장에 들어오는 방식이 바뀌었고, 플레이어가 원하는 것도 바뀌었다"고 전했다.
새로운 놀이가 등장하면서 아날로그 게임의 세계 전체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결국 TSR은 '매직 더 개더링'의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에 인수되었지만, 또 다른 가능성으로 출판 대기업인 랜덤하우스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윈터는 "사내 누구도 랜덤하우스에 회사가 팔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 점만은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애초에 TSR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은 랜덤하우스의 대량 반품이었으니 당시 직원들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TSR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D&D는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가 그 뒤를 잇게 된다.
D&D의 50년 역사를 다룬 세션의 전반부에서는 1970년대 초창기부터 TSR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1990년대까지의 증언을 전했다. 후반부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Dungeons & Dragons 3rd Edition(3판)' 이후 관계자들의 증언을 전할 예정이다. 3판은 일본에서도 친숙한 규칙으로, 그 어느 때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장용권 기자 mir@gamev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