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형택의 콘텐츠 이야기
스타트업 대표들과 상담을 하면, 고민의 지점이 몇 가지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우수한 인력의 확보와 매출, 그리고 마케팅이다. 그러나 마케팅에 대한 고민은 잘못 된 방향인 경우가 많다.
물론 대부분 스타트업 대표가 마케팅을 전공한 경우가 적고, 경험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마케팅을 홍보와 광고로 한정해서 생각하거나, 방향성을 잘못 잡고 있는 경우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산업 혁명으로 생산 기술이 발달하여 생산이 증가하였다. 싸고, 질 좋은 제품의 생산이 증가하면서, 소비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여 재화가 남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때 주목 받은 것이 마케팅이다.
원래 소비는 물리적 마모, 즉 제품의 수명이 다하면 버리고, 새로운 제품을 사는 것이 당연했다. 제품의 사용에 문제가 없다면, 할아버지가 사용하던 물건을 아버지가 물려받고, 아버지가 사용하던 물건을 아들이 물려받아 사용했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에 따른 생산 증가는 과잉 생산이 되었고, 소비를 확대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때 제시된 개념이 사회적 마모이다.
사회적 마모는 제품의 사용에는 문제가 없으나, 사회적 기능을 마모시켜, 제품의 수명이 다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옷은 시간이 지나면 유행이 지나, 촌스러운 것으로 마모시켰고, 전자 제품은 시간이 지나면 구형이 되어 사용하기 부끄러운 것으로 마모시켰다. 사회적으로 마모된 제품은 버려졌고, 새로운 제품을 사도록 유도되었다.
이런 사회적 마모는 자연스럽게 발생하지 않는다.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의 인식에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는 이미지를 남기는 것이다. 따라서 마케팅은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구매 목적을 판매하는 행위이다.
50인치 LCD TV를 잘 사용하는 집이라면, 굳이 60인치 OLED TV를 구매할 이유가 없다. 순수한 TV 사용의 목적을 넘어서는 사회적 마모에 따른 구매일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도 생산 기술은 발전할 것이고, 생산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이에 따른 소비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고, 마케팅의 필요성도 이에 따라 높아질 것이다.
20세기 후반 사회적 마모를 넘어선 기술적 마모의 개념이 시도된 적이 있었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 기술과 다른 것이고, 과거의 기술로 생산된 제품을 사용하지 말고, 더 좋은 기술로 생산된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사용한 것이다.
추가적인 소비를 창출하고자 한 이 시도는 실패하였다. 사회적 마모에 동의했던 소비자가 기술적 차이에 따른 소비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소비자는 트렌드, 유행, 새로움을 소비했지만, 더 좋은 기술을 소비하지는 않았다.
스타트업의 마케팅 전략을 들어보면, 아직 물리적 마모의 개념이나 실패한 기술적 마모의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더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한다고 강조하거나, 기술적으로 더 좋은 성능의 제품을 생산한다고 강조하는 형태다. 이 마케팅 전략은 B2B 시장에서는 의미가 있으나, B2C 시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과거 중국 공산당 주석이었던 덩사요핑이 이야기한 “흑묘백묘론”처럼 검은 고양이인지 흰 고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쥐를 더 잘 잡는 고양이라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지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가 어떻게 다른 지를 설명하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기술적 차이를 설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혹은 반려묘를 찾는 것이라면 어느 고양이가 더 매력적이고, 사람과 친화적인 지가 더 중요하다. 더 좋은 스마트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고 싶은 스마트폰이 필요하다.
콘텐츠 분야에도 더 좋은 기술, 더 화려한 효과, 더 유명한 캐릭터, 더 유명한 배우 등을 강조하며 더 잘 팔릴 것이라고 강조하는 제작사를 자주 만나게 된다. 더 좋은 콘텐츠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더 사고 싶은 콘텐츠가 중요하다. 더 화려한 그래픽과 더 경험 많은 제작 스탭으로 게임을 구매하지 않는다. 더 하고 싶은 게임이라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게임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하다.
박형택 칼럼니스트 aceand@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