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년에 몇 차례 투자 과정과 투자 유치에 관한 특강을 한다. 보통 신입인 투자 심사역이나 초기 창업자, 벤처 기업 보육 기관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벤처기업 투자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하는 강의인 경우가 많다. 벤처 투자가 진행되는 과정이나 투자 단계별 특징, 단계별 필요한 서류나 투자의 방법, 기업 성장 단계별 차이점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꼭 빠지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그래서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투자한다.”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위험 요소가 없는 벤처기업은 없다. 그래서 투자한다는 말은 투자 대상 기업의 매력적인 요소 때문에 투자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많은 벤처기업의 사업 모델은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 이런 매력적인 요소들은 분명 투자의 포인트이다.
그러나, 투자에서 매력만큼 중요한 요소는 위험 요소에 대한 대응이다. 투자 매력에만 집중해서 투자하면, 위험 요소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위험 요소는 투자 반대의 이유로 수많은 공격을 받게 된다. 검토하지 않은 위험 요소는 투자의 명분을 잃게 만든다. 그럼에도 투자한다는 말은 위험 요소를 충분하게 검토했다는 이야기이다. 위험 요소를 충분하게 인지하고 있지만, 투자하고자 하는 기업이 그 문제를 잘 해결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자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창업자와 위험 요소에 대해서 충분하게 이야기하고, 투자자가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해결책을 찾는 과정 등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런 의사소통의 과정은 창업자가 회사의 강점에 집중해서 놓치기 쉬운 기업의 문제점을 인지시켜 창업자의 시야를 넓혀주기도 한다.
이런 위험 요소에 대한 검토는 창업자에게도 필요하다. 창업하는 과정은 위험 요소를 함께하는 과정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는 무조건 발생한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창업자가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기업의 생존 문제이다.
창업자들을 살펴보면,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피해서 돌아가기도 하고, 정면 돌파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며, 문제가 커질 때까지 일단 외면하고 기다리기도 한다. 투자를 결정하는 시점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는 없으나, 피해서 돌아가는 창업자는 돌아가는 과정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일단 외면하는 창업자는 그 문제가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하지만, 보통 나중에 문제가 커져서 수습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창업자가 적절한 해결책을 찾을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너무 똑똑하고, 신사적인 대표들이 문제 해결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똑똑한 대표는 자신의 사고 안에서 논리적인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찾아지지 않으면 바로 우회할 방법을 찾거나, 일단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 많은 문제를 예상하기 때문에 창업 자체를 잘 하지 않는다.
문제의 해결에는 터프함이 필요하다. 현대 그룹 초대 회장인 정주영 회장의 말버릇인 “이봐, 해봤어?”는 이런 터프함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런 터프함이 있는 창업자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다. 이런 창업자의 터프함은 옆에서는 보이지만, 같은 조직에 있거나, 자신의 문제인 경우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똑똑하고, 신사적인 창업자는 많지만, 생각 외로 이런 터프함이 있는 창업자는 드물다.
게임사 대표 중에도 이런 터프함이 부족한 대표가 많다. 너무 스마트하고, 신사적이며, 경험도 많고, 뛰어난 사람이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좌절하거나 회피할 것 같은 유형의 대표가 많다. 게임 제작은 인건비가 제작 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인력 관리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십수 명에서 수십 명이 공동 작업하는 게임 제작에서 모두에게 신사적인 기업 경영을 할 수는 없다. 망한 게임 제작사 임직원에게 듣는 말 중 무척 안타까운 이야기는 “대표님이 사람은 참 좋았는데....” 라는 말이다. PD나 팀장 같은 제작 실무자나 관리자로 뛰어난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 대표를 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창업을 준비하시는 게임 업계 사람들은 스스로 터프함에 대해서도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박형택 칼럼니스트 aceand@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