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술에 배가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한국 게임이 잇따라 승전고를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개척 분야였던 PC 패키지와 콘솔 시장에서 나온 성과라 의미가 크다.
시장규모로 보면 한국은 세계 4위에 해당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세계 게임시장 점유율은 약 7.6%다.
이런 성과는 온라인과 모바일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콘텐츠 수출 비중도 아시아 시장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2023년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PC패키지와 콘솔 플랫폼으로 출시한 게임이 서구권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는 등 주목할 만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넥슨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 |
그동안 한국 PC패키지 게임은 온라인이나 모바일과 비교하면 주목받지 못했다. 대작(AAA급) 규모로 개발되는 게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인디와 소규모 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게이머의 환대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질 뿐이었다.
올해는 시작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넥슨이 선보인 ‘데이브 더 다이버’가 이례적인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8일에 출시돼 열흘 만에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아기자기한 이야기와 여러 게임 요소를 버무린 게임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 PC패키지 게임도 된다는 가능성을 입증했다.
<사진> '데이브 더 다이버'를 개발한 김준학 그래픽연출담당(왼쪽), 우찬희 기획담당(가운데), 모세은 SFX담당 |
사실 ‘데이브 더 다이버’는 국내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타이틀에 속한다. 넥슨의 서브 브랜드인 민트로켓이 내놓은 첫 게임이기 때문이다. 재미를 최우선으로 개발한 작은 게임(리틀)에 포함된 것도 대작을 선호하는 분위기와는 달랐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화제작이 됐고, 결국 넥슨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IP(지식재산권) 반열에 올랐다. 이는 한국 게임이 꼭 대작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한 게임이 인기를 끌면 짝퉁게임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실제로 '데이브 더 다이브'는 스팀과 모바일 오픈마켓에는 이 게임을 연상케 하는 짝퉁이 범람하고 있다. 단순한 장르나 게임성의 모방이 아닌, '데이브' 혹은 '다이버'와 같은 단어를 직접적으로 썼다는 점에서 높아진 이름값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넥슨이 글로벌 진출에 작은 게임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퍼스트 어센던트’가 좋은 예다. 서구권 시장에 뿌리내린 루트슈터 장르로 개발된 대작으로, 오픈 베타 첫날에 스팀에서만 동시 접속자 수 7만 명을 돌파했다. 얼리 액세스로 출시한 대전게임 ‘워헤이븐’도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P의 거짓’을 향한 세계 유저들의 뜨거운 반응이다. 출시 첫 날부터 다양한 공략 영상과 스트리밍 방송이 시작됐다. 커뮤니티에서는 보스 몬스터와 진행에 필요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필자가 다녀온 도쿄게임쇼 2023(TGS) 현장에는 정식 출시된 게임을 즐기기 위해 긴 대기열이 형성됐을 정도로 주목도가 높았다.
‘P의 거짓’은 네오위즈 라운드8스튜디오가 개발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벨 에포크(19세기 프랑스 문화 양식)를 쓴 고풍스러운 그래픽, 어려운 난이도와 탐험 요소가 특징으로 꼽힌다. 정식 출시 이후 완벽한 최적화와 장르적 해석이 준수한 평가를 받았다. 마무리가 아쉽다는 평이 있지만,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란 점은 모두가 동의하는 분위기다.
<사진> 'P의 거짓' 최지원 디렉터 |
사실 네오위즈는 PC패키지 게임을 주기적으로 선보여 온 회사다. 국산 인디게임 최초로 100만 장 판매고를 기록한 ‘스컬’, 리듬액션게임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얻은 ‘디제이맥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특히, ‘디제이맥스’에 사용된 음악은 ‘P의 거짓’에서 사용됐으며, 해외 유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꾸준한 활동이 결국 빛을 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그렇다고 새로운 도전이 아직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는 없다. 성공사례는 적고, 연속성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열매를 맺기 위한 꽃봉오리가 건강하고 튼실하게 맺어졌다는 점이다. 이 꽃망울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고, 맛있는 결실이 풍성하게 열리길 기대해본다.
서삼광 기자 seosk@gamev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