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확실하게 분리됐던 게임과 엔터테인먼트(이하 엔터) 사업의 경계가 점차 흐릿해지고 있다. 게임사는 엔터 사업에 진출하거나 협업하고, 반대로 엔터 업체가 게임 사업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
그 이유는 결국 IP(지적재산권)의 영향력을 다른 산업군과 사용자로 넓히는 것이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성장시킨 IP를 다양한 엔터 산업에 활용해 그 가치를 높이고, 매번 새로운 IP를 만들 수 없는 만큼 유명 엔터 IP를 게임화해 흥행을 시킬 수도 있다.
또 엔터사 입장에서도 그들이 보유한 강력한 IP를 활용해 게임을 만든다면, 영향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양쪽 진영에 대한 니즈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움직임이 있었지만 단순 협업에 그쳤기에 성과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인수 혹은 직접 움직이는 방법으로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최근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은 컴투스다. 미디어 콘텐츠 사업을 적극 추진 중인 컴투스는 최근 2년 간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SF 영화 ‘승리호’의 특수효과로 유명한 위지윅스튜디오, KPOP 플랫폼인 마이뮤직테이스트를 인수했고, SM엔터테인먼트에도 투자를 진행했다.
그리고 최근 그 결과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블랙의 신부’, ‘신병’ 등의 드라마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위지윅의 계열사인 래몽래인과 함께 만든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최근 화제 속에 종영하면서 그 성과가 주목받고 있다.
컴투스는 이미지나인컴즈와 고즈넉이엔티, 에프포스트, 팝뮤직 등 4개의 계열사를 통합해 출범한 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영화와 드라마, 예능, 공연 등 30편 이상의 콘텐츠를 올해 출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게임을 넘어 음악, 영화, 드라마, 공연 등 글로벌 종합 콘텐츠 시장을 공략하는 콘텐츠 밸류체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엔씨소프트도 엔터 업계에 활발한 투자를 해왔던 게임사 중 하나다. 엔씨소프트는 2010년대부터 JYP엔터, IHQ와의 업무협약을 시작으로 레진코믹스, 재담미디어, 문피아 등 유명 콘텐츠 업체에 대한 투자를 이어왔다.
그리고 2016년부터 ‘피버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해 유명 가수들과의 협업으로 공연과 음원 발매 등을 진행해왔다. 또 엔씨소프트의 캐릭터 브랜드 ‘스푼즈’로 아이돌과 협업해 관련 굿즈와 웹 예능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2020년에 엔터 자회사인 클렙을 설립해 팬덤 플랫폼 '유니버스'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엔터 산업에 발을 들였다. 수장에는 김택헌 CPO가 선임됐고, 아이돌을 활용한 독점 콘텐츠 제공이나 다양한 팬덤 활동을 모바일 플랫폼에서 할 수 있는 서비스로 주목받았다.
넥슨도 꾸준히 엔터 사업에 투자해온 곳이다. 고 김정주 창업주가 넥슨을 디즈니 같은 종합 엔터 회사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혀 오기도 했다. 이를 위해 미국의 완구 회사인 해즈브로를 비롯해 일본의 엔터 업체를 보유한 반다이남코홀딩스, 코나미홀딩스, 세가사미홀딩스 등에 투자해왔다.
또 2년 전 넥슨 필름&텔레비전 법인을 설립해 디즈니 출신 임원을 배정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의 영화와 드라마 제작사이자 ‘어벤저스’ 시리즈로 유명한 루소 형제가 설립한 독립 영화 제작사인 AGBO 스튜디오에 5억 달러를 투자하며 최대 주주가 됐다.
이를 통해 넥슨 IP를 TV와 영화로 확장시키기 위한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이와는 별개로 넥슨코리아는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 부부가 만들고 있는 영화 ‘리바운드’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스마일게이트도 다양한 엔터 사업을 펼쳐왔다. ‘크로스파이어’ 기반 드라마인 ‘천월화선’을 제작해 중국에서 방영해 20억 조회수를 기록했고, 게임 기반 테마파크도 운영했다. 또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영화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넷마블은 엔터 업체인 하이브에 2,014억을 투자하고 BTS 관련 게임을 제작했다. 최근에는 드라마 ‘비밀의 숲’ 제작사이자 김아중, 한혜진 등 연예인이 소속된 에이스팩토리를 인수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스튜디오드래곤과 협업해 ‘아스달 연대기’의 세계관 확장에도 나섰고, 자회사를 통해 웹툰과 웹소설 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크래프톤도 작년 초 사업목적에 엔터 사업을 추가하며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이미 ‘배틀그라운드’ IP를 활용한 단편 영화와 웹툰 제작을 진행했고, 할리우드 출신 제작자를 영입해 애니메이션 제작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드라마 제작사인 히든시퀀스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더 리버레이터’를 제작한 미국의 엔터 기술 업체인 트리오스코프에 투자하며 엔터 콘텐츠 제작을 위한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더해 스마일게이트는 ‘한유아’, 넷마블은 ‘리나’, 크래프톤은 ‘애나’ 등 각 업체가 제작한 가상인간이 엔터 소속사와 계약을 맺고 음원이나 광고 출연 등의 활동을 벌이며 기술 기반 엔터 사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의 선두에 있는 곳은 BTS(방탄소년단)로 유명한 하이브다. 하이브는 2019년 게임사인 수퍼브를 인수해 게임 사업에 손을 뻗었고, 게임 총괄 자회사인 하이브IM을 설립해 수장에 넥슨코리아 대표를 지낸 박지원 대표를 내정했다.
이를 통해 그동안 ‘리듬하이브’나 ‘인더섬 with BTS’ 등의 게임을 만들었고, 이제는 플린트가 개발 중인 ‘별이되어라 2’를 시작으로 퍼블리싱 사업에 진출을 선언하기도 했다. 특히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은 작년 열린 지스타에서 이 부분에 대한 방향성을 명확히 했다.
그는 “게임은 엔터와 관련된 모든 요소들이 함축한 매력적 콘텐츠이며, 매력만큼 기술적 역량을 집중해야 했다. 그리고 새로운 길이었기에 결단이 필요했다. 게임이 타 엔터와 융합하는 것처럼, 종합 엔터 기업의 영속성과 경쟁력을 더 강화할 분야는 게임이며 필수적으로 진출해야 할 분야”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다른 엔터 업체들도 게임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지 관심이 모아진다.
박상범 기자 ytterbia@gamev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