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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진짜 소통’이 무엇인지 보여준 ‘로스트아크’ 금강선 디렉터

기사승인 2021.12.30  17: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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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앤슬래시의 귀환…뭔 개뿔 핵앤슬래시…이거 과대광고에요 사실”(과거 업데이트 홍보 문구를 돌아보며)”

“까놓고 말할께요. 이거 포기하면 매출의 17% 정도가 날라갑니다. 아바타 매출을 올려주셨기 때문에, 이 매출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우리 미래와 맞교환 하죠. 이게 ‘로스트아크’식 재투자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아브렐슈드’ 레이드 하드 난이도 내고 나서 ‘이불킥’ 많이 했어요. ‘사이버 유격’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오지 않았을까요?”

“’카멘’ 레이드는 욕을 먹든 말든 절망적으로 만들꺼니까. 한 번 붙어보자구요”

“저희가 그런 짓을 할 정도로 정신 나간 사람들은 아니예요”(‘웨이’ 신용 카드를 부정하며)

“네 저희 정신 나갔습니다.(‘웨이’ 신용 카드를 공개하며) 아까 채팅 보니까 ‘웨이’ 신용 카드 나오면 산다고 하셨어요 분명히? 사셔야 되요”

금강선 디렉터

위에 적힌 문구는 ‘로스트아크’ 금강선 디렉터가 지난 18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유저 간담회 ‘로아온 윈터’에서 실제로 한 발언들이다. 발언의 수위와 분위기만 보면 유저 간담회라기 보다는 인터넷 게임 방송 같지만, 분명 현직 게임 디렉터가 실시간 방송에서 한 말이다. 그리고 금강선 디렉터는 약 3시간 동안 이런 분위기로 새로운 콘텐츠를 발표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풀었다. 그의 발표를 다 듣고 나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게임 디렉터와 유저들간의 진짜 소통이다’라고. 

본 기자는 ‘로스크아크’를 즐기진 않는다. 출시됐을 때 어떤 게임인지 파악하기 위해 잠깐 해본 정도다. 가끔 인터넷 게임 방송을 통해 군단장 레이드를 지켜보긴 했다. 그래서 이번 유저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진 못한다. 애초에 ‘로스트아크’ 유저 간담회를 시청한 이유도 업데이트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유저들에게 ‘빛강선’이라고 불리는 금강선 디렉터의 발표를 직접 시청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발표를 얼마나 잘하는지, 어디 한 번 보자’라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이런 동기로 시청한 유저 간담회는 본 기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시스템은 매출의 17%를 차지한다’, ‘지금 다시 보면 이건 과대광고다’, ‘욕을 먹든 말든 절망적으로(어렵게) 만들꺼다’라는 금강선 디렉터의 발언이 거침없이 나왔다. 그리고 유저들의 입장과 심정이 어떤지를 개발진이 충분히 이해했고, ‘이렇게 개선하겠다’라는 내용이 나왔다. 이런 이야기가 주제별로 계속 이어졌다. 듣다 보니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발표가 종료된 후에는 ‘게임 디렉터가 이렇게 발표를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유저들의 공감을 격하게 받으면서 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게 진짜 소통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발표 내용을 떠나서, 금강선 디렉터의 말을 듣고 있으면, ‘솔직함’과 ‘개발자들도 유저들 심정이 어떤지를 이해한다’라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지고 전달된다. ‘로스트아크’를 잘 모르는 본 기자가 이 정도라면, ‘로스트아크’를 제대로 즐기는 유저들은 이런 디렉터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금강선 디렉터는 이런 ‘텐션’을 무려 3시간 동안 유지했다.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15분 정도의 발표를 생방송으로 해도 긴장하고 위축될 것이다. 게다가 그 게임이 수 십만 명이 즐기는 유명한 게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금강선 디렉터는 3시간을 온전히 스스로의 발표로 꽉 채웠다. 그러면서 ‘로스트아크’를 잘 모르는 본 기자 같은 사람조차도 지루하지 않고 발표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동시에 트집 잡힐 만한 발언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간혹 거친 말이 나오더라도, 모두가 웃어 넘길 수 있는, 적절한 수위였다.

질적으로 보나 양적으로 보나, 이런 발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업 인터넷 게임 방송인들도 그냥 잡담이 아니라 뭔가 대대적으로 준비한 발표를 3시간 정도 하게 되면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될 것이다. 중간에 실수도 나올 수도 있고,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이 나오기도 하고, 트집 잡힐 발언이 나오기도 할 것이다. 즉, 발표가 길어질수록 더 위험해지고 실수가 나올 확률도 높아진다. 따라서 대부분의 게임 개발자들이 발표를 길게 하는 것을 꺼린다.

그런데 금강선 디렉터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디렉터가 게임 개발도 잘 하면서 발표도 이렇게 잘 하고, 유저들의 공감을 격하게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덕분에 ‘빛강선’이라는 별명이 왜 나왔는지를 확실하게 이해했다.

조금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보면, 금강선 디렉터는 인기 게임이 대규모 업데이트 내용을 발표하는 방식에 대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어느 정도 제시해줬다고 본다. 바로 ‘인터넷 방송’의 컨셉을 차용하는 것이다. 현재 게임을 즐기는 세대들은 대부분 인터넷 게임 방송도 같이 본다. 인터넷 게임 방송의 분위기는 지상파 방송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형식이나 격식에 구애 받지 않고 ‘말랑말랑’하다. 기존 게임이 유저 간담회에서 진행하는 업데이트 발표는, 비유하자면 지상파 방송의 뉴스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그리고 금강선 디렉터의 업데이트 계획 발표는 인터넷 게임 방송인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실제로 발표 중간에 금강선 디렉터가 실시간 채팅을 보면서 반응해주기도 했다.

물론, 게임 업체 입장에서 업데이트 발표를 항상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1년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큰 행사가 있을 때나 이런 컨셉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디렉터들이 금강선 디렉터 처럼 발표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즉, 다른 업체가 따라하고 싶다고 해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름 절충안을 제시해본다면, 대규모 업데이트 발표를 실시간으로 하고 싶다면, 해당 게임을 즐기는 유명 인터넷 방송인을 섭외해서 게임 디렉터와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업데이트 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일년에 한 번쯤은 그렇게 발표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아무튼, 희대의 ‘사기 유닛’ 같은 금강선 디렉터 혹은 ‘빛강선’ 덕분에, 다른 유명 게임의 유저 간담회나 업데이트 계획 발표에 대한 기대치나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로스트아크’는 발표를 이렇게 했는데, 다른 게임은 어떻게 했다는 식으로 비교도 많이 되고 있다. 이 영역에서 다른 게임 업체들도 ‘로스트아크’를 따라잡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게임 자체가 아니라, ‘게임 업데이트 계획 발표’이긴 하지만, 이런 발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유저들이 이렇게 만족하고 격하게 감동을 받을 수 있다면, 큰 게임 업체들도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김창훈 기자 changhoon8@gamev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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