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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PG 불모지에서 모바일 TRPG를 만드는 원동력, '사람'과 '용기'

기사승인 2021.11.21  09: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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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개발사인 엔퀘스트는 이제 설립된지 1년이 갓 넘은 곳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권태용 디렉터는 고등학교 때부터 애니메이션 분야로 게임업계에 입문, 벌써 15년 정도의 근무 경력을 갖고 있고, 피쳐폰 시절부터 시작해 오직 모바일 게임만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지인들과 개발사를 설립해 미연시나 액션 RPG, 갬블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납품하거나 개발 및 서비스를 해왔다.

엔퀘스트의 윤석현 대표와는 개발사와 퍼블리셔 관계로 인연을 맺었던 사이인데, 1년 전 함께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엔퀘스트를 설립, '더 퀘스터'라는 게임 개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그 장르가 평범하지 않다. 바로 TRPG(Tabletop RPG)이기 때문이다.

TRPG란 현재 사람들이 즐기는 RPG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보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나 정형화된 도구가 없던 시절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종이와 대화를 통해 게임을 진행한 것이 시초이며, 이후 탄생한 TRPG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던전 앤 드래곤즈'와 '월드 오브 다크니스', 그리고 '워해머' 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이것들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게임들이 출시됐고 특히 서구권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TRPG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후반 국내에서도 TRPG 바람이 불었지만 PC방 문화의 확산과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라는 대체제들이 등장하며 인기는 점차 시들었고, 현재는 소수의 마니아들을 위한 즐길거리로 남아 그 규모는 크게 줄어들게 된다.

그런 만큼, 설립된지 1년이 갓 넘은 신생 개발사가, 탄탄한 캐시카우 없이 국내에서 첫 신작으로 모바일 기반 TRPG를 만든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모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은 과감하게 모험을 택한 것일까? 권태용 디렉터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엔퀘스트 권태용 디렉터 (인터뷰는 방역수칙을 준수해 진행했으며, 사진 촬영을 할 때만 잠시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이전 프로젝트를 마무리지은 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한 번 정도는 개발자로서 만들고 싶었던 것'에 대해서 직원들과 쭉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과거에 TRPG를 많이 했었다는 공통 분모를 찾게 됐다.

TRPG를 국내 한정으로 만들기는 어려운 만큼 해외에서 잘 나가는 TRPG를 직접 플레이를 해보고 그 성과와 유저층 등 시장 조사를 하고 규모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우리도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진행하게 됐다.

개발진들이 5년 정도 호흡을 맞춰 온 만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 부분도 프로젝트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고, 무엇보다 국내에서 TRPG 유저 수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중에 나온 RPG들의 기본은 TRPG라고 개발진들이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개발진이 TRPG를 좋아하니까 개발을 시작한 것도 있지만 다들 TRPG에 대한 이해도가 있기에 모바일 플랫폼으로 TRPG의 재미를 충분히 전달한다는 것을 개발 방향으로 삼았다. 실제로 “프로그래밍을 잘하는데 TRPG를 모르는 사람을 가르치는 것보다, TRPG를 아는 사람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게 훨씬 쉽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기존에 게임으로 나온 TRPG들을 분석해보니, 이것을 완전한 형태로 풀어낸 게임은 매니악하기도 하고 호응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장소에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특정 요소를 차용해 포인트 하나를 잡고 있는 게임이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그래픽에서 2D와 3D 중 어떤 것으로 할지에 대해 고민했을 뿐 처음부터 플랫폼은 모바일로 생각했다. TRPG 기반 게임이 스팀 플랫폼에서는 이미 많지만, 모바일은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약 1,270만명 정도 오프라인에서 TRPG를 즐기고 있고 온라인까지 합치면 적어도 2천만 명 정도의 유저층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진입에 성공한다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사업적 판단도 있어 시작하게 됐다.

그래서 우린 어떤 걸 목표로 잡아야 하는 생각했는데, 역시나 어려웠다.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먼저 오픈해야 하는 만큼 좀 더 캐주얼하고 받아들이기 편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어디까지 TRPG에서 불편한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 이 게임은 '던전 앤 드래곤즈'(D&D)의 요소를 많이 참고했다. RPG의 근간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처음부터 “우린 D&D야!”라고 선언하고 룰북을 사고 정독하며 시작했는데,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가면 너무 힘들어할 테니, 제거할 건 하고 개선을 하면서 가볍게 하는 방향으로 개발을 진행했다. 

왜냐면 룰북을 익히는 데만 최소한 1주일 이상이 걸리고, 심지어 그 룰북을 보면서 게임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규칙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에, 이걸 게임에서 그대로 표현하면 유저는 대부분 이탈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여러가지를 과감히 쳐냈다.

특히 TRPG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인 주사위를 늘어냈다. 원래 TRPG에서는 어떤 액션이든 주사위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RPG는 때릴 때 정해진 산식에 따른 대미지가 들어가는데, 때리기 전에 주사위를 돌리고 그 결과값으로 때린다면, 플레이가 너무 늘어진다. 

TRPG 초보자들이 운에 좌우되는 것들을 긍정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주사위를 굴리며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잦아질수록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어서 만들었지만 들어낸 상태다. 반복이나 운에 기대는 부분을 줄인 것이다. 

'더 퀘스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탐험 콘텐츠다. 할 때마다 다른 느낌과 목적성을 주는 것을 기본으로 했고, 이걸 베이스로 탐험 내에서 변화되는 부분에 집중을 많이 했다. 제일 어려웠던 건 플레이의 방향성이었다. 탐험의 목표는 동일한데 유저가 느끼는 디테일한 과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 구축한 건 턴제 기반에 TRPG스럽게 전략과 상황 판단에 충분한 시간을 주는 방식이었는데, 플레이가 너무 루즈하고 처졌다. 그래서 방식을 엎어 빠르게 가져가고, 이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결국 빠른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유저들의 플레이에도 텐션이 있는 만큼 계속 집중해서 할순 없기 때문이다. 

탐험으로 돌아다니는 부분에서 피로도가 다소 높은 게임이기 때문에 전투마저 그렇다면 피로도가 더 쌓이는 만큼 오토로 하되 수동 컨트롤이 효율적이도록 했다. 최근 트렌드도 감안한 것이다. 그래서 탐험에서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전투는 좀 쉽게 하자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적어도 10번 이상 엎은 것 같다.

탐험의 맵 크기는 15~20만 타일 정도가 되며, 9개의 챕터와 40개의 던전을 만든 상태다. 그리고 탐험은 들어갈 때마다 오브젝트와 몬스터의 위치가 바뀌는 구조이며, 던전도 생성될 때마다 길의 구조가 바뀌는 형태다. 

여기에 숨겨진 몬스터들과 요소들, 찾아내는 상자나 이벤트 위주의 구성 등을 통해 유저들이 플레이할 때 기존의 게임과는 다른 느낌을 받도록 접근을 많이 했고, 기존의 TRPG를 경험한 사람은 원래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창구나 유저끼리 대결하는 부분도 있는데, 계속 개발을 진행하면서 이게 맞는 방향이고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게임에 호감을 느끼게 되면 그 다음에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기에 최종적으로 그런 부분들은 과감하게 덜어내자고 얘기가 돼서 탐험에 집중한 상태다.

개발사는 유저에게 게임에 대한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유저가 재밌는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해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TRPG는 협동이 중요한 만큼 그 부분을 최우선으로 업데이트할 예정으로 서비스 시작 뒤 가장 먼저 해야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콘텐츠를 포기한다는게 쉽지 않다. 유저간 경쟁은 매출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 포기하고 슬로우 템포로 천천히 성장해도 되고 과한 경쟁을 하지 않고 탐험에 집중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게임을 만들고 있다.

일단 FGT로 게임의 검증을 받으려 한다. 대중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기 때문이고 그 시각이 완전히 우리 생각과 어긋나는게 아니라면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중성의 고민에 대한 총알은 준비해놨다. 맞다고 생각하면 넣는 구조로 할 예정이다.

사실 모바일 환경에 맞게 만드느라 진짜 하고 싶었던 걸 적용하지 못한 것도 있다. 나중에 플랫폼을 바꿔서 정통 TRPG를 만들고 싶은 욕구도 많다.

무엇보다, 이 회사는 다른 회사보다 개발에 대한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하고 있다. 내부 종사자 대부분이 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 함께 성공할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얻은 수익은 나누는게 맞다는 철학이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장르로 만들고 싶은 게임 개발을 꿈꾸는 지망생에게 해 줄 말이 있다.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다. 사람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게임이란 게 처음에는 안좋아해도 나중에 좋아할 수 있고, 그 반대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안 그렇다. 사람은 항상 옆에 있으며 관계도 좋아야하고 같이 일할 때도 좋으면 문제가 없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꾸준한 관계를 유지하고, 거기에 더해 뭔가 할 수 있는 도전하는 용기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이 기반이 되면 어느 순간에는 기회가 온다. 사실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용기는 언제든 낼 수 없다. 사실 '더 퀘스트'의 개발도 윤석호 대표가 용기를 내고 결단해줘서 함께 하자는 얘기가 나왔던 거다. 여러분들도 그런 기회가 오길 기대한다.

박상범 기자 ytterbia@gamev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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